PSYENCE가 오늘로 서른 살이 되었다. 나는 그 세월을 hide의 두 장면 사이에서 잰다.
첫 번째 장면에서 그는 살아 있고,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1997년 2월 8일, hide는 NHK POP JAM에서 “Hi-Ho”를 연주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JSTV로 그 방송을 봤다. 신호가 자주 스크램블되던 채널이었지만 그날은 선명했다. 분홍색 머리의 남자가 믿기 어려운 의상을 입고 댄서들 사이에 나타났다. 그의 노래는 마치 록 음악을 파티에 초대한 것처럼 들렸다.
나는 hide도 X JAPAN도 몰랐다. 그의 옆에 있던 기타리스트가 PATA라는 것도 몰랐다. visual kei가 무엇인지, 밴드의 역사가 어떤지, 그 안에서 hide가 어떤 위치였는지도 전혀 몰랐다.
다만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는 것만은 알았다.
두 번째 장면은 11년 뒤다. 이제 나는 hide가 누구인지 정확히 안다. X JAPAN의 재결성 공연을 취재하러 프랑스 기자단과 Tokyo Dome에 와 있다. 한때 텔레비전 신호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했던 살아 있는 남자는 이제 무대 위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그 두 화면 사이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중 상당수는 PSYENCE에서 시작됐다.
열여섯 트랙, 직선은 없다
앨범은 1996년 9월 2일 발매됐다. “Hi-Ho”는 12월 18일 “GOOD-BYE”와 더블 A사이드로 이어졌다. POP JAM 무대가 방송될 때까지도 프로모션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프랑스의 한 사람에게 닿았다.
“Hi-Ho”는 내 인생의 한 곡이 됐다. PSYENCE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가 됐다.
이 앨범을 alternative rock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 말이 무언가를 설명한다고 믿는 데 있다.
타이틀곡은 나이트클럽 오케스트라와 스파이 영화 음악 사이 어딘가에 있는 스윙 브라스로 시작한다. 그다음부터 음반은 여러 방향으로 뻗는다. “DAMAGE”는 기타, 프로그래밍된 리듬, 왜곡된 목소리를 하나의 기계 안에서 짓이긴다. “BACTERIA”는 의도적으로 적대적이고, 그 직후의 “GOOD-BYE”는 1998년 5월 2일 hide가 세상을 떠난 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무게를 얻게 될 제목과 멜로디를 드러낸다.
한 문장에 담을 슬픔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PSYENCE는 추도문처럼 다루기엔 너무 생생하다.
“LASSIE”는 다듬으면 의미가 사라질 만큼 데모의 거친 느슨함을 그대로 남긴다. “Hi-Ho”는 퍼커션과 여러 사람의 목소리 위에서 튀어 오른다. “MISERY”의 리믹스는 록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팝을 향해 팔을 벌린다. 짧은 연주곡들조차 중요하다. hide가 다시 규칙을 바꾸기 전에 공기의 질감을 바꾼다.
이 앨범은 거울 앞에서 여러 의상을 시험하는 뮤지션처럼 들리지 않는다. hide는 각각의 아이디어가 지속되는 동안 끝까지 밀어붙인다. 브라스는 스윙해야 한다. 노이즈는 아파야 한다. 후렴은 거대해져도 된다. 좋은 취향이 지루해지는 순간에는 나쁜 취향도 환영받는다.
열여섯 트랙. 한 시간을 조금 넘긴다. 직선은 없다.
그런데도 PSYENCE는 한 번도 익명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hide는 모든 변형 속에서 여전히 보인다. 프레이징, 기타 연주, 유머, 그리고 곡을 합리적인 종료 지점보다 한 걸음 더 밀어붙이는 즐거움 속에서.
자유를 가능하게 한 기계
I.N.A.는 hide가 그 자유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실제 연주는 녹음된 뒤 잘게 나뉘고 디지털로 재구성됐다. 그래서 라이브 악기와 프로그래밍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흉내 내지 않고도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hide는 이 방식을 간단히 설명했다. 가능한 한 작은 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가능한 한 높은 밀도.
그 밀도는 분명히 들리지만, 앨범은 자신의 야심에 짓눌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격적일 수도, 우스울 수도, 멜로디컬할 수도, 연극적일 수도 있지만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 출발을 선언하지 않는다.
PSYENCE는 Oricon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X JAPAN 뒤에 숨겨진 개인 실험실이 아니었다. 대중도 함께 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앨범은 일본 밖에서 종종 제시되는 단순화된 hide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X JAPAN은 중요하다. visual kei도 중요하다. 하지만 타이틀곡에 왜 브라스가 들어가는지, 왜 “BACTERIA” 다음에 “GOOD-BYE”가 오는지, 왜 “Hi-Ho”가 아무도 들어오기 전부터 방을 가득 찬 것처럼 느끼게 하는지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앨범 전체를 들어보라. 충돌 자체가 핵심이다.
JSTV에서 Tokyo Dome까지
나는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찾아 나섰다.
hide는 나를 X JAPAN으로 이끌었고, 거기서 훨씬 더 깊이 일본 음악으로 데려갔다. 그 매혹은 음반과 텔레비전 기억을 모은 개인적인 컬렉션에 머물지 않았다. JaME가 됐다. 몇 년 뒤에는 J-POP streaming이 됐다.
그날 JSTV 신호가 스크램블됐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증명할 수는 없다. 어쩌면 다른 아티스트가 다른 문을 열었을 것이다. 다만 hide가 먼저 거기 있었거나, 적어도 충분히 일찍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없었다면 JaME는 아마 같은 형태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만은 안다. J-POP streaming은 더더욱 그렇다.
JaME는 이 이야기가 결국 내 텔레비전 화면 밖으로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Los Angeles에서 YOSHIKI를 만났고, 2007년에는 그를 Japan Expo에 초청했다. 이듬해에는 X JAPAN과 일했고, 프랑스 기자단을 이끌고 Tokyo Dome 재결성 공연에 갔다.
그리고 거기에 hide가 있었다. 백스테이지가 아니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사이도 아니었다. 부재를 담기에 충분히 큰 아레나 안에 투사된 빛이었다.
2009년에는 J.E. Live House에서 PATA와 Ra:IN과 함께 일했다. POP JAM에서 hide 옆에 있었지만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기타리스트가 이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만남들이 hide를 만나지 못한 일을 대신한 적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YOSHIKI는 YOSHIKI였고, PATA는 PATA였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나눌 대화가 있었고, 운영해야 할 행사가 있었다.
다른 의미는 나중에 찾아왔다.
그들에게 그 친구가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 음악이 내가 반드시 탐험해야 할 세계처럼 느껴지게 만든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다는 것. 내가 그들 앞에 서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면, 그 안에 hide의 몫도 있었다는 것.
그때는 그 사실을 충분히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PSYENCE는 서른 살이 됐다. “Hi-Ho”는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hide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